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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로드웨이 최장수 뮤지컬

2023년 4월, 30년 이상 브로드웨이를 주름잡았던 오페라의 유령이 막을 내렸다. 1988년 막을 올리고 약 1만4천 회의 공연이라는 대기록을 달성하고 떠났다. 2013년에 브로드웨이 25주년이라고 대대적으로 홍보했던 기억이 바로 어제 일 같은데... 이때 즈음 아마 세 번째로 봤던가.

 

오페라의 유령의 비밀 아닌 흥행 비결(?)은 '우려내기'에 있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처음보다 두 번째가, 두 번째보다 세 번째가 보면 볼 수록 새롭고 재미있어지니 그저 신기할 따름이다.

 

공연장에 처음 간 것은 뉴욕살이 첫 해였다. 매년 가을즈음이면 '브로드웨이 2 for 1'이라는 행사를 하는데, 티켓 두 장을 한 장 가격에 살 수 있는 이벤트 기간이다. 이런 절호의 찬스는 놓쳐서는 안되니. 보고 싶은 작품을 몇 개 고르면서 4대 뮤지컬 중 하나는 봐야 한다는 의무감에 (당시 브로드웨이에서 공연중인 유일한 4대 뮤지컬이었음) 오페라의 유령을 끼워넣었다.

 

이미 영화로 익숙한 터라 무대 버전을 한번 보자, 하고 갔는데, 미안한 이야기지만 그 첫 만남 때엔 중간중간 졸았다. 2층 메자닌(mezzanine) 왼편에 앉아 있었는데, 무대에서 가까운 자리는 아니긴 해서 집중력이 떨어졌나. 하지만 맨 처음에 샹들리에 올라가는 장면이나 팬텀이 뿅, 뿅 하고 여기저기서 나타나는 장면 등을 보기엔 나쁘지 않은 자리임에도 불구하고 영 재미를 제대로 붙이지 못했다.

 

한 번 보는 걸로는 부족하다

'그래도 뭐 한 번은 봤으니 됐다'라고 하고 다른 작품들 보느라 신나게 지내다가 1년인가 2년 뒤에 어쩌다 또 보게됐다. 아니 그런데 이게 웬걸, 지난 번에 왜 졸았는지 하나도 이해가 안 갔다. 두 번째 봤을 때엔 무대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그 아름다움에 취했던 것 같다.

 

그러다 25주년 때 취재로 다시 한번 보게됐는데... 이번에는 스토리와 노래가 훅 들어오는거다. 두 번째와 세 번째 관람 사이에 한동안 오페라에 관심이 생겼는데, 오페라 몇 편을 보고나서 '오페라'라는 장르에 대한 기초적인 이해가 생겨서 그랬던 것 같다. 결국 이 이야기는 오페라 가수들의 무대 밖 스토리가 메인인 뮤지컬이지 않던가. 일종의 '백스테이지' 이야기.

 

너무나도 익숙하고 잘 안다고 생각했던 명곡들도 매번 너무 달랐다. 누가 부르냐에 따라 달랐고, 어제 다르고 오늘 다르고, 낮 공연이 다르고 저녁 공연이 달랐다. 그게 바로 '공연'이라는 장르의 매력인 것을, 그 현장감에 매료돼 자꾸 공연장을 찾게된다는 것을, 새삼 다시 한번 되새겼다. 아 참, 그리고 내가 살아가는 하루하루의 시간과 경험도 매번 달라지고 누적되니, 같은 공연을 보더라도 그 공연을 보는 나 또한 매번 새로운 경험을 꿰어와 새로운 관객이 되는 것도.

 

 

 

뮤지컬은 뮤직이지

장수 공연의 비결은 뭘까. '뮤지컬이 왜 뮤직+컬(Musical)인가'라는 질문에 가장 충실한 답변을 내놓는 작품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만큼 오페라의 유령은 '음악'이 가장 핵심되는 작품이다. 

음악을 맡은 주인공은 다름아닌 앤드류 로이드 웨버(Andrew Lloyd Webber). '에비타(1978)' '캣츠(1981)' 등에 이어 '오페라의 유령'에서도 웨버는 천재성을 가감없이 발휘한다. 

클래식 오페라에서부터 드럼과 오르간 등을 사용한 뮤지컬 음악까지, 귀를 사로잡는 멜로디와 가사, 배우들의 노래 실력이 핵심이 되어 작품을 이끌어 나간다. 영국 초연(1986년) 당시 웨버의 아내였던 사라 브라이트만이 '크리스틴' 역을 연기해 큰 인기를 얻으며 작품은 화려하게 출발했다. 1988년에는 토니상 베스트뮤지컬상도 수상했다. 

 

이야기는 오페라하우스에 숨어 사는 팬텀, 그리고 무대 위 소프라노 크리스틴, 크리스틴을 사모하는 라울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팬텀을 향한 연민과 라울을 향한 사랑 사이에서 갈등하는 크리스틴. 음악으로 크리스틴을 매료시키며 그를 가지려 하는 팬텀. 그리고 그런 팬텀으로부터 크리스틴을 지키고 보호하겠다 하는 라울, 이 삼각 관계가 작품을 이끌어 간다. 그리고 여기에 음악이 감정선을 이끌어 간다. 

댄서였던 크리스틴이 오페라 주인공의 아리아를 처음 노래하는 곡 'Think of Me'는 그저 아름답다. 크리스틴과 라울의 사랑을 노래하는 듀엣 'All I Ask of You'는 멜로디와 가사가 주옥같다. 팬텀의 지하 세계에 끌려간 크리스틴, 그리고 팬텀이 함께 부르는 'The Phantom of the Opera'는 웅장하다. 노래 뒷부분에서 팬텀의 지휘로 노래하는 크리스틴의 고음은 소름을 돋아낸다. 팬텀이 쓴 오페라 '돈 후안 트라이엄판트'를 무대 위에서 연기하는 팬텀과 크리스틴의 'The Point of No Return'은 매혹적이다. 

 

영화로도 많은 사랑을

뮤지컬은 2004년 조엘 슈마허 감독의 지휘 아래 스크린으로 자리를 옮겨왔다. 청초한 크리스틴과 거친 팬텀, 젠틀한 라울이 연기하는 이 작품은 자칫 어려울 수 있는 뮤지컬 버전을 대중에게 좀 더 가까이 가져갔다는 면에서 좋은 평가를 받는다. 화려하면서도 어두운 원작 뮤지컬의 분위기와 스타일을 스크린 속에 잘 살렸다. 

그럼 뮤지컬과 영화 중 어떤 것을 먼저 볼까. 둘 다 화려한 무대와 세트로 눈을 사로잡는다. 다만 오페라에 가까운 분위기를 느끼고 싶거나 음악에 충실하고 싶다면 뮤지컬을, 스토리와 연기에 집중하고 싶다면 영화를 먼저 보는 것을 추천한다. 아니면 가스통 르루(Gaston Leroux)의 1910년 소설을 먼저 읽는 것도 방법이다. 

 

뮤지컬은 제한된 공간에서 방대한 스케일의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것 자체가 이미 놀랍다. 유명한 첫 샹들리에 장면부터 시작해서 팬텀의 지하 세계와 무대 위를 유유히 휘젓는 보트, 옥상 위에서 크리스틴과 라울이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는 장면, 2막 첫 장면인 '마스커레이드' 무도회 등. 시시각각 변하는 무대 위 세계에 아름다운 선율이 더해 감동을 더한다. 

(25주년 당시 작성한 부분) 25주년 답게 배우들의 연기 또한 뛰어나다. 현재 브로드웨이의 팬텀은 스웨덴 출신 피터 조박. 2011년 영국 웨스트엔드 공연 25주년 기념으로 로얄알버트홀에서 열린 오페라의 유령 공연 마지막 장면에서 팬텀을 연기해 박수 갈채를 받았다. 동에 번쩍, 서에 번쩍 하는 팬텀답게 실제 무대 위에서도 여기저기에서 '깜짝 등장'한다. 현재 크리스틴 역을 연기하는 시에라 보게스 또한 로얄알버트홀에서 연기했다. 이번 공연으로 브로드웨이에 데뷔한 '라울' 역의 카일 바리식도 눈에 띈다. 중저음의 목소리로 라울을 연기하면서도 팬텀과는 구별되는 목소리가 매력적이다. 

 

이번엔 영화. 영화 '300'의 제럴드 버틀러가 '팬텀' 역을 맡았으며, 에미 로섬이 '크리스틴' 역을, 패트릭 윌슨이 '라울' 역을 연기했다. 흥미로운 사실은 다른 두 캐스트와는 달리 제럴드 버틀러는 이 영화를 촬영하기 전까지 전문적으로 노래를 배운 적이 없었다는 점. 영화에서 버틀러는 화려한 노래 실력을 뽐내지는 않지만 가면 뒤에 숨겨진 모습까지도 진솔하게 연기해 호평을 받았다. 웨버가 직접 골라 크리스틴을 연기한 에미 로섬은 메트로폴리탄오페라 어린이 코러스 출신으로, 여러 오페라 작품으로 다져진 노래 실력으로 안정적인 연기를 선보인다. 라울과 팬텀의 사랑을 한 몸에 받는 '어린 소프라노' 역에도 제격이다. 로섬은 이 역으로 골든글로브상 뮤지컬 여우주연상 최연소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당시 14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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